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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하지만 이제는 세계에서도 입방에 오르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예측이 불가능한데요. 그러면서도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를 적재적소에 탁월하게 사용하여 관객들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감독입니다. 그의 생애와 성격, 영화감독으로서의 경력, 기생충이 일으킨 바람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생애

1969년 9월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영남대 미술대학과 효성여대 교수 및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을 역임한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봉샹균이며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인 박소영입니다. 어린 시절 봉준호는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지만 특별한 끼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말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방의 서재에는 외국에서 사 온 디자인 책과 영화, 사진집이 진열되어 있어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자랐고,  포스터컬러와 물감을 작업하시는 모습도 많이 봤다고 할 정도로 그의 어린 환경은 그림, 문학, 음악을 고루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만화책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였지만 봉준호의 가족들은 만화책도 즐겨 보는 환경이었으며 그가 영화감독이 된다고 했을 때도 큰 반대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의 시대의 분위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굉장히 열린 사고를 지닌 가정환경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고 영화광으로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물론 부모님과의 의견차이가 생겨 영화연출 전공을 하지는 못했지만 영화 동아리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영화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은 오전에는 수업, 낮에는 데모, 밤에는 자신이 참여한 데모를 다룬 신문 기사를 읽는데 주 일과였다고 할 정도로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후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과 각본가로 경력을 쌓다가 싸이더스 영화제작사 대표에 눈에 띄어 플란더스의 개라는 장편 영화로 데뷔를 했습니다. 흥행은 못했지만 이 영화로 그의 비전을 본 영화사의 기회로 바로 대망의 살인의 추억 영화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성격

봉준호 감독은 그가 만든 영화에서도 슬쩍 알수 있듯이 세상을 향한 예리한 통찰력과 유머를 동시에 녹여내는 감독입니다. 본인 스스로를 집착과 강박이 강한 예민보스 완벽주의 성향이라고 말하지만 주변과의 불화가 없을 정도로 겸손하고 따뜻한 인품을 가진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되려 장점이었다고 합니다. 스토리보드와 실제 촬영 현장의 차이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 배우들이 연기하기가 수월했다고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또한 현장에서 큰소리를 지르지 않고 스태프들을 잘 챙기는 등 남에게는 관대하나 본인에게는 혹독한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수상 소감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그는 달변가입니다. 미사여구로 가득 찬 달변이 아닌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절제하지만 명료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그는 어마어마한 영화광으로 광활한 영화지식을 바탕으로 어느 영화인을 만나도 심도 있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인 것 같습니다. 이를 방증하기라도 하듯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 대학생들의 가장 존경하는 영화감독 1위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경력

첫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는 일상적인 소재에서 사회적 풍자를 이끌어내는 그만의 유머가 적절히 섞인 연출스타일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풍자적인 유머로 한국사회의 중산층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살인의 추억(2003)은 바로 봉준호 감독을 사람들 귀에 때려박게 만든 작품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 범죄 스릴러로 엄청난 흥행과 배우들까지 떡상시킨 영화입니다. 괴물(2006)은 봉준호 감독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 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괴수를 소재로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사회를 비판하였습니다. 괴물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이로써 봉준호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스타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사회비판까지 담아낸 전무후무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되었습니다. 설국열차(2013)는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영어권 작품으로 한국 영화 역사상 437억이라는 가장 큰 제작비를 투입해 만들었으며 봉준호 감독의 장기인 사회 비판적 시각을 국제적인 무대로 넓힌 작품으로 계층 구조와 인간 본성을 의미 있게 다뤄냈습니다. 옥자(2017)는 넷플릭스와 협업해 새로운 영화 배급 방식의 포문을 열었으며 전통적인 영화 산업 방식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당시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넷플릭스 공개 이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국제동물보호협회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등 동물 애호가들에게 지지를 받았습니다. 기생충(2019)은 블랙 코미디 서스펜서로 사회의 극단적인 빈부의 위치에 있는 두 집단의 서사를 통해 현대 사회에 실존하는 빈부격차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감각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나왔던 '냄새'라는 대사는 우리도 일상에서 맡았을 냄새이기 때문에 그 단어 하나로 영화에 더욱더 직간접적으로 몰입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천만 관객까지 돌파하고 대통령 축전을 받는 등 그의 돌풍에 대한민국이 들썩였습니다. 그는 또 명석하게도 수상 인터뷰에서 불어를 못해서 미안하다며 영감을 받은 프랑스 감독을 언급하며 겸손과 센스까지 보여줬습니다. 

기생충이 일으킨 바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한국 영화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이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기생충은 한국 영화가 단순히 낯선 외국어 영화가 지닌 한계를 넘어,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한국영화가 국제에도 주류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기여를 했으며 한국영화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관심을 증가시켰습니다. 기생충이 전 세계 영화 산업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말하는 언론과 관계자들이 많습니다. 미국 자본이 없는 순수 비영어권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부문 최고상을 휩쓸었기때문입니다. 아카데미는 미국 영화상 시상식인데 한국영화가 있다는게 이상하다는 반응도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 아카데미는 이미 영국은 물론 유럽, 일본 등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후보 반열에 올려왔습니다. 기생충 이전에도 비영어권 외국 영화가 최우수 작품상 후보, 감독상 후보에 올랐었으니까요. 다만 그동안 한국 영화가 후보에 오른 적은 없었다는 다소 슬픈 사실이 있지만, 그래도 기생충 영화로 순수한 비영어권 작품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기며 비영어권 창작자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하마구치 류스케는 통역을 통해 "기생충은 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기생충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작품을 위해 우리 영화가 이렇게 많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했으니까요. 또한 대단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보통 반드시 호평을 받은 영화가 대중적으로 히트를 치는 것은 아니며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또한 그런 색이 짙은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은 상업영화인 예술성과 동시에 대중성까지 잡아낸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보여줬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산업에 남긴 형향은 단순히 예술적 성취를 넘어서서 한국영화의 세계 진출과 영화 배급 모델의 새로운 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힘이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준데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이며 그가 자유롭게 새로운 도전을 지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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