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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신랑과 함께 영화 곡성을 봤습니다. 옆에서 코 골며 자는 신랑과는 반대로 저는 영화를 곱씹으며 궁금증에 밤잠 설쳤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무엇이 맞는지 정답을 생각할수록 더욱더 혼란스러웠던 곡성을 만든 감독 나홍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탄생
나홍진 감독은 공예를 전공한 미술학도에서 만화가로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떤 계기로 영화감독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을까요? 머릿속에는 영상이 돌아가는데 그림이나 작품처럼 정지된 프레임만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면서 만화작업을 그만두고 그 길로 광고 프로덕션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때의 너무 좋아서 잠도 잘 생각도 없이 신나서 밤새 일했던 기억이 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광고의 특성인 15초의 짧은 영상은 그의 창작력이나 욕망을 펼치기엔 너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조감독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영화판에 뛰어들었습니다. 주변에 물어볼 사람 없이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다 한계를 느낀 그는 한예종 영상원에 입학해 영화인으로 첫출발을 하게 됐습니다. 미술에서 광고, 영화까지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뤄본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고 시간도 걸렸지만 되려 그런 시간이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아갈 수 있는 예비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나홍진 감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완벽주의
완벽주의성 성향이 강한 나홍진 감독은 콘티 작업과 편집에 광적으로 집착할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감독인데요. 영화 황해 개봉일을 미리 잡아둔 탓에 달 반이라는 촉박한 시간 안에 후반 작업을 마치고 개봉을 하게 됐습니다. 감독이 원하는 완성도에 못 미쳤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흥행이 실패하게 됐고, 이로 인해 그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후에 세 달을 더 편집한 감독판 블루레이를 수록할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나홍진 감독은 이후에도 3년 가까이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 후에 나온 영화 곡성은 영화의 시작부터 매우 신중하게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촬영은 6개월, 편집만 1년 가까이 소요됐습니다. 배우들은 하나같이 감독의 집요한 연출 스타일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요. 가족 같은 분위기로 호흡을 맞춰가며 작업하는 방식이 아닌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완벽함을 추구하는 작업방식의 감독이기 때문에 그의 방식이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같이 작업했던 황정민은 자신도 감독님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서로 케미가 잘 맞았으며 영화는 원래 그런 식으로 찍어야 한다고 했으며, 천우희 또한 그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되려 섬세한 성격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을 잘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성토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거나 집요한 게 아닌 그저 최선의 결과를 위한 노력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일화로 그의 완벽주의적인 모습은 곡성 촬영 시 과로로 입원했을 때도 보였는데요. 병원에서 현장으로 출퇴근하며 촬영을 강행했다고 할 정도니 자신에게도 매우 엄격한 완벽주의적인 감독인 것이죠.
4885 너지? 추격자
나홍진 감독은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전직 형사였던 보도방 주인이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마를 추적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관객들에게 각인될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이나 대사가 많은 영화인데요. 명장면들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보도방 주인인 엄중호가 연쇄살인마를 맞닥뜨렸을 때 "야, 4885! 너지?"라고 묻는 장면은 많은 관객에게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연쇄살인마는 업소 여성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을 벌이는데 멀쩡해 보이면서 거짓말을 일삼다가 다혈질적이었다가 하는 명연기를 잘 보여줬는데 특히 좁은 화장실에서 업소 여성이었던 서영희를 망치로 살해시도하는 장면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마치 제가 거기 있었다면 얼마나 무서웠을지 완전 몰입이 되는 장면이었죠. 하얀 순면 팬티만 입고 살해도구를 들고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은 진짜 사이코패스 같았답니다. 마지막으로 명장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간신히 살아 나온 서영희가 슈퍼 아줌마의 실수로 결국 죽게 되는 장면입니다. 답답한 상황에 극장 안 여기저기서 탄식소리가 연거푸 터졌지만 살인마의 평소모습은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제작 여건의 한계로 시나리오가 수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추격자는 완벽주의적인 그의 고집대로 시나리오 그대로 연출했습니다. 경찰서 내부의 책상 배치까지 모두 시나리오 그대로 만들었으며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감독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는 게 대단합니다. 엔딩 장면은 원래는 훨씬 더 잔인했다고 합니다. 이걸 써도 되나 싶을 정도였는데요. 연쇄살인마에게 죽은 서영희는 죽어서도 성하지 못했는데 엔딩씬 내내 촬영장을 굴러다닌 건 서영희의 신체들이었고 김윤석과 하정우의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 피해자의 신체 일부로 연쇄살인범을 가격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을 두고 촬영 전날까지 제작진들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하네요. 제작자와 배급사의 요청에 따라 엔딩 장면을 수정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팔고, 일본에서는 체이서라는 제목으로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대사와 장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으니 아직 영화를 못 본 분이 계신다면 정신 딱 붙잡고 직접 감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뭣이 중헌디! 곡성
곡성 이전에 개봉했던 황해는 흥행에 성공을 하지 못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콘티 라인대로 가야 한다는 강한 집착을 했었는데, 곡성 작업을 하면서 자신에게 유연성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곡성 작업 때는 콘티를 보지 않고 촬영 현장에서 홍경표 촬영감독과 그날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기대 이상의 내용을 영화에 담을 수 있었고 후반 작업에 들어서면서 홍경표 촬영감독이 정말 세계적인 거장임을 깊이 느꼈다고 합니다. 여기서 홍경표 감독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하자면 반칙왕, 킬러들의 수다, 지구를 지켜라, 태극기 휘날리며, 마더, 설국열차, 해무, 곡성, 버닝 등 국내와 해외에서 흥행한 영화를 촬영한 감독으로 할리우드 DP시스템(촬영감독이 조명, 그립팀을 직접 꾸리는 시스템)을 가져와 한국 영화계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촬영감독입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자신만의 느낌을 현장에서 효율적이고 직관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됐다고 하네요. 곡성은 나홍진 감독의 전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들을 믿어야 하는지 의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고 악의 탄생과 번영에 대해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황정민이 살을 날리는 장면 한국의 샤머니즘과 외국의 공포를 혼합해 선과 악의 충돌을 박진감 있고 몰입감 넘치게 표현됐습니다. 완벽한 안무, 강렬한 신체연기, 시끄러운 북소리와 무속성가가 오가는 장면을 실제와 같이 만들기 위해 실제 무당도 현장에 데려오고 한국의 전통 구마 의식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최종 편집본에서는 15분 남짓한 영상이지만 며칠에 걸쳐 촬영했다고 하네요. 공포, 종교, 민간 설화같이 상상 속에 남을 만한 주제를 혼합하여 생생한 영상으로 만들었고, 스릴러와 오컬트를 결합해 장르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장르적 특성이나 결말로 호불호를 많이 탔던 영화라 오락 영화보다는 예술 영화에 더 치중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